20대엔 산이나 꽃이나 풀이나 동물엔 1도 관심이 없었는데 30대가 되면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바뀌는 걸 보니 40대엔 또 어떤 식으로 관심사가 바뀔지 모르겠구나. 뭐든 너무 확신하거나 단정 지어 생각하면 안 되지. 생각해보면 난 누구보다 앞선 비혼 주의자였었지만 지금은 결혼을 해서 만족해 살고 있으니.. 2016년 2월에 결혼을 하고 구로 투룸 오피스텔에 살던 시절 불현듯 관악산에 가볼까라는 남편의 가벼운 제안으로 시작된 2인 부부 산악회. 결혼초엔 열심히 씨드머니 모으던 시절이라 사실 돈 안 드는 취미로 등산이 딱이었다. 이후로도 봄, 가을이 되면 종종 산에 올라가곤 했는데 산이 가진 각각의 특징과 혹은 무용담이 뒤섞인 이야기들을 곱씹고 나누는 게 또 하나의 재미랄까? 이제 결혼 5년 차가 되어가니 슬슬 각 산의 시기와 높이를 잘못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 마음먹고 넘버링해 보기로 한다.
결혼하고 함께 간 최초의 산 관악산. 정상에서 만난 고양이 지금도 생각난네 잘 지내니? 나름 귀엽게 김밥은 또 챙겼었네
관악산을 가뿐하게 다녀와서 자신감이 차올라 있던 상태로 물 한병 안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한 북한산.
고양시 쪽에서 출발해서 올라가는데 초반엔 경치도 보고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었던 거 같은 데 가도 가도 끝이 없고 내려오시는 분들은 거이 다 와간다고 거짓말을 하시고 ( 우리가 내려올 땐 올라가는 분들에게 거이 다 왔다고 힘내라고 거짓말함) 밧줄 타고 올라가서 도착한 북한산 정상에 도착하니 다들 배낭에서 먹을 것들을 꺼내 드시는데 우리만 빈손이라 쾡한 얼굴로 바로 내려감. 돌산이라 내려가는 게 더 힘들었던 거 같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무식하면 그렇게 용감한 거야 그리고 심지어 그날 미세먼지도 최악인 날이었어.
제주도에 간중 사상 최고로 날씨가 좋았는데 이전에 갔던 험했던 돌산들에 비하니 오름은 편안한 산책느낌
2018년 2월 탈서울 하고 분당으로 이사 옴. 서울 서쪽이 익숙한 나에게는 낯선 분당이었지만 모든 상황상 분당의 작고 낡은 아파트로 와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파트 바로 근처에 불곡산이 있어서 좋았다.
신분당선을 타니 청계산 입구 역이 생각보다 가까워 가본 청계산. 워낙 유명한 산이라 기대가 컸는데 계단이 많아서 힘들었다. (결국 돌 때문에 힘들다 계단 때문에 힘들다 힘든 이유도 가지가지)
등산객이 거의 없었고 길이 정비가 덜 되어 있어서 힘들었던 예봉산 ( 사람이 너무 없으면 지루해서 힘들다 정비가 덜 되어 있어서 힘들다. 아주 끝도 없구나) 팔당 쪽은 자전거로만 왔었지 등산으로 오니 새로운 느낌
가장 많이 와봤던 산. 산이라고 하기엔 다소 민망하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니까! 등산으로 인정! 사실 남산 주변이 은근히 커서 공원 쪽도 볼만하고 한옥마을도 볼만하다. 안 힘들고 즐겁기만 했던 산행
서울 수도권에 평생을 살면서 도봉구는 처음 와봄. 말로만 듣던 도봉산을 가는데 가는 길에 알게 된 도봉산 페스티벌
각종 축제라면 꽤 가볼 만큼 가본 사람이지만 산에서 페스티벌이라니 시작부터 설렘. 각 지점마다 도장을 받고 내려오면서 추첨을 하고 코인으로 바꿔주면 그 코인으로 주변 식당에서 코인을 내고 밥을 먹는데 뭔가 선사시대의 물물교환 같은 느낌도 나고 코인 때문인지 740m였는데 희한하게 하나도 안 힘들었던 것이 유일한 산행이었다. 도봉산 때문에 도봉구로 이사 오고 싶을 뻔
자차로 여행을 하면 여행 같은 느낌이 안 나서 웬만하면 버스나 기차를 타고 걷는 여행을 선호하다 보니 산도 수도권 위주로 가곤 했었는데 최초로 수도권 이외의 산으로 와본 치악산. 역시나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 있으니 당연히 힘들었다. 특히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힘들었던 기억.
1+1 산행은 뿌듯함도 2배. 사람도 많고 중간에 오름 느낌 나는 평지도 매력적이었던 곳. 등산하고 내려와서 서울대공원 가서 동물 구경하기도 좋았다. 역시 수도권 산이 좋아
2020년 2월 또 2년 만에 이사. 이전 집이랑 가까운 행정구역상 수지구로 이사 옴. 상대적으로 가까운 광교산 발견! 젊은 등산객이 정말 많았고 오르락 내리락의 반복이 심해 생각보다 힘들었던 (대체 힘든 이유의 끝은 어디까지 인가) 광교산 내려올 때 경기대 쪽으로 내려와 학교 내 식당에서 식혜를 사 먹었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맛. 식혜 먹으러 경기대 다시 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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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수락산, 637m (2020.4.11)
정상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와 가파른 내리막에서 주저주저하는 친구에게 신발을 믿고 내려가라는 아저씨들의 귀여운 대화가 인상적이었던 수락산.
이날은 남편 노트북 수리 맡기러 용산에 갔다가( AS 접수 과정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고 컴공 남편이 정색하자 바로 시정해주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짐) 돈가스를 먹고 따릉이 타고 광화문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즉흥적으로 간 인왕산. 밀레니얼 세대인 중년의 신혼부부인 우리는 바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림. 이날은 날씨가 너무 더워서 또또 생각보다 힘들었다. 자꾸만 생각보다 힘들었다고 하는 걸 보니 그냥 저질체력을 인정해야겠다.
제주도 숲길 느낌 나던 검단산 초입길. 날씨가 다했던 등산
등린이들의 겨울은 등산 비수기로 웬만하면 산에 가지 않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집 근처 산은 가보기로 한다. 사실 불곡산과 대지산은 연결되어 있는 산이라 익숙한 편이라 눈길을 밟고 걷기도 괜찮았다.
결혼을 하고 등산을 꽤 자주 간 줄 알았는데 날짜로 정리를 하다보다 생각보다 많이 가진 않았구나 싶다. 어디 가서 등산이 취미라고는 못하겠다. 워낙 매 등산마다 힘든 강도가 세다 보니 그 강렬한 기억 때문에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던 거 같다.한국지리 시간에 우리나라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라고 할 때 감흥이 없다가도 막상 산을 다니다 보면 정말 산이 많은 나라임을 느낀다. 다양한 초록의 톤이 존재하는 숲 속에 들어가 있으면 정신과 육체가 모두 환기되는 것 같다. 집도 환기를 시키듯이 나를 환기시키는 과정으로 등산이 적합하다.
인생이 한 없이 힘들게 느껴지고 찐득거리는 고통의 덩어리에 두들겨 맞아 슬퍼지는 날이면, 초목이 무성한 장소와 그 안의 새 한마리가 기분을 바꿔주고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다. 닥쳐오는 마감일이 세상의 종말처럼 느껴질 때,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때면 그런 장소로 나가보자. 당신이 무기력해져 소파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들큼한 슬픔의 진창에 빠진 기분일 때, 이 책으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읽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나아가 직접 고둥이나 족제비를 찾아 나섬으로써 위한을 찾게 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걷자. 두 발로 걷거나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자. 하다못해 뒷마당에서라도 초목과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생명체를 찾아 나서자. 기분을 바꾸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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