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부터 나에게 봄은 곧 전주였다. 4월 말 5월 초가 되면 저절로 전주가 떠오른다. 20대에 난 미술과 예술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기에 전주에서 보는 예술영화들이 전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상업영화가 주는 클리셰적인 연출과 전개에 진절머리가나 있던 나에게 전주영화제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고 당시의 대대적인 규모의 축제 속에 내가 속해있는 게 좋았다. 과거에는 영화제의 규모와 예산이 지금보다 훨씬 커서 밤을 새워 영화를 보는 <불면의 밤>과 같은 프로그램도 있었고 사람들도 더 많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그램도 줄어들고 축제 참여자들도 줄어드는 게 느껴지더니 작년엔 영화제 개최 취소의 상황까지 발생하는 걸 지켜보니 나의 젊음이 사그라드는 것 같은 과잉의 감정까지 느껴졌다. 올해는 고양이들이 집에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당일치기로 도전하기도 한다.
원래는 성남(야탑)버스터미널에서 출발했었는데 최근에 기흥역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성남과 기흥 딱 중간에 있는 우리는.. 이번엔 기흥역으로 가보기로 한다. 기흥역까지 자차로 20분 만에 도착! 주차장은 아주 넓고 쾌적하다. 일 주차 6천 원이지만 우리는 저공해 차량이라 3천 원으로 부담이 없다. 기흥역 4번 출구로 나오니 진짜 터미널 정류소가 있네 신기하다.
출발할 땐 날이 흐렸었는데 버스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그사이 날이 맑아져 있었다. 역시 전주영화제 하면 날씨를 빼놓을 수 없지~
11시 첫번째 영화보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굿즈샵부터 털었다.
굿즈 결제하려는데 서포터스는 10% 할인이라는 글을 보고 다급히 10년 전에 가입해 놓은 서포터스 멤버십을 보여주자 즉시 10% 할인받았다. 10년 전에 한 5천 원으로 가입한 거 같은 멤버십은 혜택이 너무 크다. (영화도 1천 원 할인) 그러다 최근의 멤버십 입회비가 5만 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플레이션의 무서움을 다시 느끼며 난 영화제 멤버십 인플레이션 헷지 했다며 또 뿌듯.
영화 시작 5분 전까지도 관객은 우리 둘뿐. 거리두기로 좌석이 띄엄띄엄 휑하다. 평일에 가서 그런가?
이제 전주에서 먹을만한건 먹어볼 만큼 먹어봤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착각이었다. 허영만 님이 다녀간 돌솥 육회비빔밥집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 이제 건강식 좋아하는 나이라 딱 마음에 드는 메뉴였다.
밑반찬도 하나같이 다 맛있고 일하시는 분들도 활력이 넘치고 육회비빔밥도 맛있었다. 이거 먹으러 온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정도
점심까지 먹고 나니 소화시킬겸 팔복 예술공장으로 가기로 한다. (이제 더 이상 한옥마을은 안 가기로ㅎㅎ) 마침 1시간에 1대씩 운영하는 팔복 예술공장행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이 맞아 공짜로 간다.
10여 년 전에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가본 이후 재생공간에 대한 관심은 꾸준했다. (이 정도면 10년 전 무새) 이후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재생공간들이 생겼고 어딜 가면 그 지역에 재생공간이 있는지 먼저 검색해 보고 방문해 보는 게 루틴이 되었다.
평일이라 사람은 없지 공간은 넓지 날씨는 좋지 역시 전주는 행복이구나
"어머 이건 사야해"
에코백 덕후로서 이번 에코백 소재도 디자인도 너무 마음에 든다
은근히 볼거리가 풍부한 기대 이상의 팔복 예술공장
2시간을 놀다가 다시 영화를 보러 셔틀 타고 영화의 거리 도착
두 번째 영화 <가족의 투시도>를 보고 막차 6시 40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이제 예전처럼 한번 오면 영화를 10개씩 보던 체력도 근성도 없다. 부담 없이 나들이처럼 와본 당일치기 영화제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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