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의 요소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벽에 무언가를 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이라는 공간에 가구들이 배치되고 나면 보통 여백의 벽에 걸리는 것들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느낄 수 있다. 주변 가족 친지 그리고 친구들의 집을 방문해 보면 각자의 벽에 걸린 것들이 다양하다. 현재와 다른 모습의 오래된 결혼사진과 아이 사진이 걸려있거나 꽃그림과 풍경화 위주로 걸려있거나 각종 상패와 감사패로 꽉 찬 벽이거나 혹은 거이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집 등 벽은 각자의 취향을 보여준다.

집을 알아볼때 전실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마음이 뺏겨 고민도 길게 안 하고 계약했다. 실제로 이사 와서 살면서도 전실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다. 자전거 4대를 두고도 공간이 여유롭게 남는다.

이전 주인이 리모델링을 하고 오래 되지 않아 집을 판 거라 딱히 큰 공사를 하진 않았다. 오히려 철거를 한 부분은 있지만 더한 부분은 없었다. 그분이 해놓은 파란색 중문은 그대로 살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보기로 하고 노란색 베이스의 추상작품으로 포인트를 주기로 한다. 미국의 미니멀 추상작가 '엘스워스켈리'의 작품을 프린트 아웃해 이케아 액자에 넣어 걸었다.

현관-입구에는 이브 생 로랑이 1970년부터 2007년까지 38년간 매년 초대장을 위한 이미지 작업을 했던 'Love'시리즈 포스터를 우리의 탄생년으로 프린트 아웃해 선반장위에 올려뒤었다. 뭔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지나 집안의 입출입을 하고 싶었달까?

현관 입구 맡은편에는 그동안 다녀왔던 여행의 비행기표나 기차표 위주로 액자에 넣어 꼴라쥬식으로 배치해 보았다. 여행사진보다도 티켓을 보는 게 더 설렘이 잘 전달된다.

사실 우고 론디로네의 작품은 실제 작가의 의도나 미술적 관점에서의 해석보다도 형광+돌 조합 자체에 매료되었다. 각각의 다른 형태의 색과 크기의 돌 4개가 서로 아슬아슬하게 또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 가족의 모습 같달까? (누구 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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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 작품은 하나쯤 갖고 싶었으나 가격이 좀 비싸다 보니 대안으로 판화 방식으로 프린트되는 리소 인쇄방식의 포스터를 사기로 한다. 눈여겨보던 판화 작가의 귀여운 포스터 구입. (+위에는 독일 미술관 창문에서 찍은 사진까지 계단식 배치) 너무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사진만 있는 것보다 추상적인 이미지와 함께 배치되는 게 좋다.

사실 피카소와 마티스는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로 후배 작가 피카소가 데뷔할 때 응원하고 지켜봐 준 선배 마티스였다. 그러다 그림에 대한 철학의 견해로 미술계에서 서로의 작품을 디스 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지만 난 둘 다 좋은걸?
마티스의 포스터는 다소 연악하고 플랫 한 이미지로 피카소의 포스터는 터치감이 살아있으면서 색채가 강렬하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걸로 배치해 강약을 조절함. (밸런스충)

반도도 그림이 마음에 드누? 깨알같이 반도 애기 때 사진도 있네?

3번 방과 주방 사이의 벽공 간에는 평소 좋아하는 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손의 작품을 세로로 배치했다. 뭔가 자연 풍경사진 말고 거대 자연에 대한 이미지를 하나쯤 걸어놓고 싶었는데 '자연'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올라퍼 엘리아손이라 그의 작업들을 떠올렸다. 문득 평소 알던 작업 말고 모르던 작업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구글링을 하다 보니 그린란드의 빙하를 실제로 코펜하겐 광장에 설치하고 녹는 과정을 그대도 관객들에게 노출하는 작업을 했었고 그 녹은 자국과 흔적을 그린 드로잉 작업이 있길래 냉큼 프린트 아웃! 했다.

싱크대의 한편 정수기와 커피메이커가 있는 곳에 전선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액자를 무심하게 세워둔다. 이 이미지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최애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영화 포스터다. 커피 내리고 물 마실 때 문득문득 보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2번 방은 재택근무하는 남편의 사무실 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낮에 고양이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기도 해서 고양이 가족이 그려져 있는 포스터를 붙였다.

거실 한쪽 구석엔 깨알같이 10년 전 나의 설치 작업물의 테스트 인화로 받은 사진을 캔버스의 뒷면에 끼워 넣어 추억으로 박제했다. (ㄱ나니? 열작하던 그때)

안방으로 들어가는 벽에는 코로나 터지기 직전에 다녀온 이탈리아에서 찍어온 사진을 붙여 창문 밖의 이탈리아처럼 공간 확장의 효과를 보려 보고 싶었으나 딱히 그런 효과는 나지 않았다.

이 작은 액자들은 신혼초에 가지고 있던 것들인데 너무 유행처럼 되어버린 이미지라 없앨까 고민했지만 그냥 안방 한편에 두기로 한다.

캣타워 옆 벽에 스크레치가 났길래 르누아르의 고양이 그림을 무심하게 붙여본다.
집 투어도 아닌 집 벽 투어 끝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집 벽을 나만의 갤러리처럼 온전한 나의 취향들로 연출해 보는 것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나의 취향의 뿌리는 은유와 추상이다. 음악, 영화, 미술, 소설, 사람 모두 은유가 없으면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집의 벽은 나의 취향처럼 변화하고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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